윤리와 사상 - 불교윤리사상 - 빨리 시작하는 공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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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연기법

불교에서는 우주만물과 현상이 원인에서 생기며[諸法從緣起], 또한 원인에 의해 소멸된다고 주장하고 있다[彼法因緣盡].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此起故彼起]. 이것이없기때문에저것이없고[此無故彼無],이것이사라지기때문에저것이사라진다[此滅故彼滅]. -“잡아함경”-
위의 글은“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와“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라는 구절로 써 존 재 의 발 생 을 설 명 하 고 있 다 . 그 리 고 “ 이 것 이 없 기 때 문 에 저 것 이 없 다 . ”와 “ 이 것 이 사 라 지 기 때 문 에 저것이 사라진다.”라는 구절로써 존재의 소멸을 설명하고 있다. 모든 존재는 그것을 형성시키는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만이, 그리고 상호 관계에 의해서만이 존재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는 것을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결국 연기법이란 존재의‘관계성’을 말하는 것이다.
연 기 법 을 경 전 의 다 른 곳 에 서 는 ‘ 상 의 성 ’이 라 고 말 하 기 도 한 다 . 경 전 의 비 유 를 살 펴 보 면 A , B , C 라 는 3 개의갈대가운데서어느한갈대가서있을수있는것은다른2개의갈대가있기때문이다.이것이있기 때문에저것이서있을수있는것이다.3개의갈대가운데서1개의갈대라도없어지게되면,다른2개의 갈대도서있을수없게된다.이것이없기때문에저것이서있을수없는것이다.이러한불교연기법은 불교 모든 교리들의 사상적·이론적 근거가 된다. 불교의 가르침은 그 설명이나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모두 연기의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응용 이론들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부처의 탄생 게(偈: 부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기리는 것)에“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이라는 노래가 있다. 태어나자마자 갓난아이가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 고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면서“천상천하 유아독존”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후세에 부처를 신격화한 데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깊은 불교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이를 현대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하늘과땅사이에살아있는것은다존귀하다.” 이세상에귀하지않은것은하나도없다는뜻으로생명의존엄성을선언한말이다. -법정“, 일기일회”-


사성제와 삼법인설

4성제에서‘제’란‘진리’또는‘진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4성제란‘4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라는 말이 다. 이것은 고성제·집성제·멸성제·도성제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간단하게‘고·집·멸·도’라고도 한 다 . 4 성 제 를 좀 더 구 체 적 으 로 표 현 하 면 ‘ 고 ’와 ‘ 고 의 원 인 ’, 그 리 고 ‘ 고 의 소 멸 ’과 ‘ 고 의 소 멸 에 이 르 는 길’이다. 4성제는 석가모니가 녹야원에서 5명의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법을 설했을 때부터 열반에 들 때 까지 45년 동안 가장 많이 설한 가르침이다. 4성제의 가르침은 불교의 궁극 목표인‘고(苦)에서의 해탈’을 위해 만들어진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간단한 교리이다. 석가모니는 의사가 병을 진단하듯이 인생의 실상 인 ‘ 고 ’를 말 하 고 [ 고 성 제 ] , 병 의 원 인 을 찾 아 내 듯 고 의 원 인 을 규 명 했 다 [ 집 성 제 ] . 그 리 고 병 의 치 료 후 건 강 상태를 말하듯이 고가 소멸된 상태, 즉 열반을 설명했고[멸성제], 마지막으로 병의 치료 방법을 말하는 것 처럼 열반에 이르는 길을 제시했다[도성제].“중아함경”에서는 4성제의 중요성을 코끼리의 발자국에 비 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코끼리의 발자국이 넓고 커서 모든 짐승의 발자국 가운데서 제일인 것처럼, 4성제 도 ‘ 한 량 없 이 좋 은 법 ’이 모 두 그 가 운 데 로 들 어 오 기 때 문 에 ‘ 일 체 법 ( 一 切 法 ) 가 운 데 서 제 일 ’이 라 고 말 하 고 있다.
한편, 3법인은 불교의 특징을 가장 단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불교의 깃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불교를 다른 종교나 사상을 구별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이 된다. 3법인과 일치하는 사상이면 불교이고 그 반대이면 불교가 아니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법인은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의 형식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무상과 무아의 개념 속에 논리적으로 고(苦)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일체 개고 대신에 열반적정을 넣어‘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의 형식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3법인은 각 법인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연결된 하나의 실천 이론으로 볼 수도 있다. 제행이‘무상’하 다 는 사 실 을 바 로 이 해 하 면 제 법 이 ‘ 무 아 ’하 다 는 것 도 알 게 된 다 . 제 행 이 무 상 하 고 제 법 이 무 아 하 다 는 것 을확실히이해하면,우리는욕망과집착의굴레에서벗어날수있게된다.그리고모든욕망과번뇌를떠 날때우리는열반에이를수있게되는것이다.


혜능(慧能)

혜능(638~713)은 당나라(618~907) 시대의 선승으로서, 선종(禪宗)의 제6조이자 남종선(南宗 禪)의 시조이다. 일반적으로 6조 대사 또는 조계 대사(曹溪大師)라고 한다. 대감 선사(大鑑禪師) 라고 시호되었다.
혜능은 신주(新州: 광둥 성)에서 태어나 3살 때 부친을 잃고 가난하게 자랐다. 어느 날, 나무를 짊어지고 팔러 다녔는데,“금강경(金剛經)”외는 소리를 듣고 출가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24세 때에 기주 황매산(黃梅山: 후베이 성)의 동선원(東禪院)에 있던 선종의 제5조 홍인(弘忍, 601~674)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나중에는 홍인에게서 선법(禪法)을 물려받아 선종의 제6조 가 되었다.
혜능은 소주(韶州) 조계(曹溪)의 보림사(寶林寺), 대범사(大梵寺)에 머물면서 신도들의 귀의 를 크게 얻었다. 대범사에서 혜능이 설한 설법을 중심으로 편찬된 문헌이“육조법보단경(六祖法寶壇經)” 또는“육조단경(六祖壇經)”이라는 이름의 선종 경전으로 후세에 전해졌다.
혜능의 제자는 43명을 헤아렸고, 중국의 선종은 이때부터 융성하게 되었다. 그의 계통의 선을 남종(南 宗) 또는 남종선(南宗禪)이라 하여 신수(神秀: ?~706) 계통의 북종(北宗) 또는 북종선(北宗禪)과 대립하다 가, 당나라 말 이후에는 남종만이 번영하였다. 남종은 돈오(頓悟)를, 북종은 점오(漸悟)를 주장하였다. 후 대에 이 양자의 선풍의 차이를 남돈북점(南頓北漸)이라 하였다.

소승 불교의 이상적 인간상, 아라한(阿羅漢)

나한(羅漢)이란 산스크리트 어‘아르핫(Arhat)’을 중국식으로 소리 나는 대로 풀어 쓴 아라한(阿羅漢) 을 줄여서 이르는 호칭이다. 소승 불교에서는 부처를 포함하여 일정 수준의 높은 성취인 해탈을 이룬 존재를 가리킨다. 따라서 석가모니 부처는 소승 불교에서 최초의 아라한으로 여겨지며, 아라한은 수
행자들이 도달하는 가장 이상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소승 불교에서 수행자 본인의 해탈이 최고의 목표인 것과 달리, 대승(大乘) 불교에서는 중생 구제
를위한완전한힘을얻을수있는최고깨달음의단계인성불(成佛)이지고의목표가된다.이러 한 대승 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은 보살이라고 한다. 따라서 대승 불교에서의 나한은 깨달음의 위 계에 있어 부처보다 하위의 존재로 구별된다. 그러나 성인으로서 최고의 단계에 들기 때문에 대승 불교에서도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 나한에 대한 신앙은 현재까지 성행하
고있어십육나한이나오백나한등을모신사찰이매우많다.


공(空)

‘공(空)’이란 개념은 불교 사상의 근본 개념을 나타내는 말로, 특히“반야경”을 비롯한 대승 경전에서 강 조 되 고 있 다 . 대 승 불 교 에 서 공 은 ‘ 자 성 ( 自 性 ) ’, ‘ 실 체 ( 實 體 ) ’, ‘ 본 성 ( 本 性 ) ’, ‘ 자 아 ( 自 我 ) ’ 등 과 같 이 인 간 이 궁극적으로 간주하는 본질적인 것들이 실제로는 없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책상 이라는 사물을 생각하는 경우, 그 책상에는 본질적으로 책상이라고 하는 자성이란 없다고 하는 것을‘공’ 이란말로나타내는것이다.책상이란나무등으로만들어져사람이그곳에서책을보거나글을쓰게하 는물건이지만,실제그책상은나무와못등이서로결합되어만들어졌을뿐그책상에사람이앉게되면 그 때는 의자로서 사용하는 것이지 책상이 아닌 것이다. 그런 까닭에 불교 사상가들은‘책상의 자성’이라 는 영원한 성격에 집착되어 있는 것은‘책상’이라는 말에 사로잡혀 함부로 가치 판단을 하는 인간 내면의 본성에그원인이있다고하였다.그리고그와같은집착을일으키는원인으로서잘못된분별을없앨것 을역설하였다.특히자아와같이인간내면의본질로간주되는것에대해서도그와같은본질적인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아라는 말에 집착되어 있는 인간의 잘못된 생각을 경계하고자 하였다.


불교의 이상적 인간상, 보살(菩薩)

소승 불교가 아라한의 불교라면 대승 불교는 보살의 불교이다. 대승의 경전은 오로지 보살의 이념과 실천에 대해 설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보살이란‘위로는 깨달음을 추구하고[上求菩提], 아 래로는 중생을 구제[下化衆生]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으로 설명된다. 대승 불교에 의하면, 중생의 구제와 불도의성취는각기개별적인것이아니다.즉중생구제는바로깨달음을구하려는마음을일으킬때세 운 서원의 실현이며, 자비행은 깨달음의 결과를 중생에게로 돌리는 실천이기 때문에 중생 구제의 이타행 과 불도의 성취는 보살의 서원으로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나아가 범부의 이타행은 연민의 분 별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차별적이고 상대적이지만, 보살의 이타행은 보리(菩提), 즉 반야의 자작 에 서 비 롯 된 것 이 기 때 문 에 절 대 적 이 고 무 차 별 적 이 다 . 여 기 서 말 하 는 반 야 란 “ 반 야 경 ”의 중 심 사 상 으 로 , 그것은 바로 무차별, 무분별의 지혜를 말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언어적 개념을 통해 세계를 분별함으 로써 어떠한 사물에 대해 다른 것과는 차별되는 그 자신의 고유한 본성이 실재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집착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사유 분별을 통해 그렇게 드러난 것일 뿐, 실상은 어떠한 차별도 없으며 고유한 본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 보살은 반드시 출가자에 한정되지 않는다.“자따까(본생담)”에 등장 하는 석가보살 역시 가지각색의 신분으로 출현한다. 출가는 물론이거니와 어떤 때에는 국왕이나 태자, 대신, 상인, 나그네 등의 재가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심지어 사슴이나 원숭이, 토끼 등 여러 유 형의 동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선(禪) 불교의 사상

선불교의 사상적 골격은 대승 불교의 실천적인 정신의 핵심인 불성(佛性) 사상과 공 (空)사상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불성을 깨닫도록 강조하고 있는 것은 만법(萬法)의 근원인 인간 각자의 주체를 깨닫는 것이며, 그 자각된 각자의 불성[本來心]으로 일체의 경 계에 집착되지 않는 공(空)의 실천을 전개하여 반야(般若)의 지혜로 무애(無碍)하게 살아 가는 것이다.
너희들은 모두 각자 자기의 마음이 바로 부처이며, 이 마음이 부처임을 확신하라. 달마대사가 인도 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것은 오직 이 법을 전하여 너희들이 각자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속장경”-
불교의 경전이나 어록에서 한결같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일체의 모든 법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일체 만법의 근원이 각자의 마음에 있으므로 마음의 법을 깨닫 는것은곧일체의만법을깨닫는것과같다.선불교에서각자의불성을자각하는견성(見
性)의 주장은 각자 스스로 만법의 근원을 자기의 마음[佛性]으로 깨닫고 한 법(法)도 일어나지 않는 근원 적인 본래심을 깨달아 각자 부처와 똑같은 지혜를 빠짐없이 갖추어 참된 진리의 삶을 살 것을 강조하고 있다.또한선불교에서는경전의주장을문자상의이해로끝내지않고직접선의수행으로깨달아자기 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효의 화쟁 사상

원효는 전래한 불교의 여러 종파적 사상을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로 합치고, 이것을 우리의 일상생 활속에서살림으로써한국불교발전의기초를확립한것으로잘알려져있다.그리하여때로는기적 적인 요소까지 결부시켜 신비화를 꾀하는 사람조차 있을 정도로 그의 역사적 의의는 크다고 하겠다.
일심이란 무엇인가? 깨끗함과 더러움은 그 성품이 둘이 아니고, 참과 거짓 또한 서로 다르지 않다. 그러므 로 하나[一]라고 한다. 그러나 이 둘이 없는 자리에 모든 법의 실다움이 허공과는 달라 스스로 신령스럽게 아는 성품이니, 이를 마음[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미 둘이 없는데 어찌 하나가 있으며, 하나가 없는데 무엇을 일러 마음이라 하겠는가? 이 같은 마음의 도리는 말을 여의고 생각을 초월했으니 무엇이라고 지목할 바를 몰라 억지로 이름 하여 하나인 마음[ 一心 ]이라고 한다. -“대승기신론소”-석가생존시에는그의설법을중생들이직접들어진의를깨우칠수있었던만큼별로이론(異論)이라 고할것이없었다.그러나이미오랜세월이경과하고또널리전파됨에따라서로다른이론들이속출하 여혹은내가옳고다른사람은옳지못하다고하는가하면,혹은나는그렇지만다른사람은그렇지않다 고 하여 드디어 무수한 논란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모순상쟁(矛盾相爭)할 때 원효는 쟁 론(爭論)이란 집착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여러 종파의 이쟁(異諍)을 화합하여 서로 다른 견해를 귀일시킨것이바로원효사상의가장기본적인특색이다.


의천의 교관겸수

불교의 어느 교파에서나 수행 방법으로서의 선(禪)을 중요시하여 왔다. 특히 화엄종이나 천태종에 서는 선의 수행을 관(觀) 또는 지관(止觀)이라고 하여 그들의 종지(宗旨) 속에서 적극적으로 일으키 려고 하였다. 원효 역시 화쟁의 논리적 추구와 지관수행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역설하며 좌선(坐禪)한 것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불립문자(不立文字),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써 이른바 종지로 하는 선종(禪宗)이 전래되어 구산(九山)에 있어서 각기 종풍(宗風)을 진작함에 이르러 교(敎)와 선(禪)은 마치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교관겸수의 가치 를 선명하게 드러내어 한국 불교의 전통적인 화쟁 정신을 중흥 선양한 승려가 바로 의천(義天)이 다. 의천에 의하면, 세상에는 완전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 적은 까닭에 교(敎)를 공부하는 사람은 내적인것을버리고외적인것을구하는일이많고,선(禪)을익히는사람은외적인것을잊고내적 으로밝히기를좋아한다.그둘이다집착인것이요경계에구속되는것이다.이는마치있지도않 은 토끼의 뿔을 두고 장단을 재려고 다투는 꼴이다. 따라서 교와 선이 상보하여 내외겸전(內外兼 全)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의천은 옛날의 선과 당시에 유행하는 선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옛날의 선은 교에 의거하여 선을 익히는 것이어서 사유를 따져 뜻을 얻을 수 있었지만, 당시에유행하는선은교를떠나선을말하고있기때문에명목에집착하여그실을잃고있다고비판하였다.



지눌의 정혜쌍수

고려의 의천은 교관겸수의 입장에서 원효를 성자(聖者)로 추앙하였으며, 지눌 역시 자기 사상의 중요 한 대목을 밝힘에 있어서 원효의 설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눌에 의하면, 범부가 자신의 본성이 부처와 다름없음을 깨우쳤다 하더라도 자신의 그릇된 습관을 갑자기 버린다는 것은 힘든 일이므로 계속된 수행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사지를 갖추었지만 그 힘이 차지 못하다가 세월이 지난 뒤에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하는 것과 같은데, 이를‘돈오점수’라고 한다. 여기서‘돈’ 은태양의빛과같이단박에만법이밝아지는것이며,‘수’는거울을닦는것과같이차츰맑아 지고 밝아지는 것이다. 그는 얼어붙은 연못이 물임을 깨달았다고 얼음이 금방 물로 변하는 것이 아니듯, 태양의 기운을 빌려야 비로소 물이 녹는 이치와도 같다고 하였다. 또한 지눌은 깨달음 이 후의 수행은‘정(定)’과‘혜(慧)’의 두 문 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리하여‘정’은 자기 마음의 체(體) 요‘, 혜’는자기마음의용(用)이니,체와용은하나도아니요다른것도아닌까닭에체는용을떠나 지않고용은체를떠날수없으니이정혜의두문을함께닦는것이수행의요체라고하였다.이를‘정혜쌍수’라고 한다. 노자와“도덕경”
노자는 그 실존 여부가 불명확한 인물이다. 사마천은“사기”에서 주나라 왕실의 문서를 관리하던 노 자가 쇠퇴한 주나라를 떠날 때 문을 지키던 문지기 윤희(尹喜)의 부탁으로“도덕경”을 지었다고 했고, 또공자가예(禮)에대해물었을때한수가르침을주고나서교만과욕심을버리라고훈계한인물 로 그려 놓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노자라는 사람은 없었고, 다만 어떤 사람들이 노자라는 이름을 빌려“도덕경”을 지은 것이라고 본다.“도덕경”은 5천자 남짓, 200자 원고 지로 25매 정도에 불과하며, 전체가 81장으로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은유와 무한한 함축을 지니고 있다. 그 가운데‘도(道)’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1장부터 37장까지를‘도경’이라 부르고, 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38장부터 81장까지를‘덕경’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최근 마왕퇴 고분에서 발굴된 비단에 쓰인‘백서 노자’는‘덕경’이 앞으로 나와 있다. 그 뒤“도덕경” 은도교와불교가성행하던위·진남북조시대에“장자”“, 주역”과더불어‘삼현(三玄)’으로높여졌 고, 특히 민간 도교의 경전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가 의식하든 그러지 못하든“도덕경”에 나타난 사상이 우리의 의식 심저(心底)를 움직이고 있고, 그것은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 삼국의 종교, 예 술, 정치의 밑바닥을 흐르고 있다. 공자의 윤리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사상이 우리 생활에서 양(陽) 적인 외면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면, 노자의 형이상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사상은 우리 생활에서 음(陰)적인 내면 세계를 움직였다고 할 수 있다.

노자의 도(道)

“도덕경”은“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참다운 도가 아 니다. 무엇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름은 참다운 이름이 아니다.”는 말로 시작된다. 여기서 노자가 말하는 도 (道)는 유교의 도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교의 도 덕은 인간의 윤리를 말한 것이지만, 노자의 도는 자연의 도로서 우주의 본체를 말하는 것이다. 도는 천지(天地) 보다 먼저 생겨났으며, 어떤 사물의 지배도 받지 않고
우리의오관으로는지각할수없다.세간에서말하는도라는것은시대와장소에따라변할수있는상대 적인 도이므로 영구불변의 상도(常道)는 될 수 없다. 우주 간에 있는 만물의 명(名)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편리하도록 지은 것에 불과하므로 그것은 영구불변의 상명(常名)이 아니다. 이 말은 언어와 같은 사회적 약속이나 도덕규범까지도 절대적인 것은 없음을 의미한다.
노자는 인간의 참모습을 억압하는 불합리한 구조와 이념은 모두 허구이며, 이는 힘 있는 지배자가 제 멋대로규정한가치일뿐또다른질곡을만들어낸다고보았다.그렇다면영구불변의도와명은무엇인 가?그것은우주의본체가되는자연의도이다.우주의본체는명이없으며또명을붙일수도없다.따라 서 무명(無名)은 천지(天地)의 시작이다. 그리고 우리가 위에 있는 것을 천(天)이라 하고, 아래에 있는 것 을 지 ( 地 ) 라 고 하 는 유 명 ( 有 名 ) 의 존 재 는 만 물 을 낳 으 므 로 천 지 를 ‘ 만 물 의 어 머 니 ’라 고 한 다 . 이 렇 듯 우 주의 본체가 되는 도는 그 어떤 욕망도 없는 자연이므로 인간도 항상 무욕(無慾)하여야 우주 본체의 묘용 (妙用)을 볼 수 있고, 사심이나 욕망으로는 본체를 깨달을 수 없다. 욕망을 가진 마음으로는 오직 본체의 형상으로 나타난 경계(境界)를 보는 데 지나지 않는다. 유(有)는 형상으로 나타난 천지(天地)이고, 무(無) 는나타나지않은본체이다.유와무는비록그이름은다르지만동일한데서나온것이며,삼라만상을생 성하는 본원으로서 지극히 현묘한 작용을 한다.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노자의 사상은 세간을 떠나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의 윤리론도 우리의 생활 경험이나 상식으로 수긍하 기어려운점이있다.먼저노자는이세상의모든것이상대적임을강조하기위하여역설의논리를펼쳤 다. 강함보다 약함을, 굳셈보다 부드러움을, 높음보다 낮음을, 많음보다 적음을, 큼보다 작음을, 남자보다 여자를, 받기보다 주기를, 유창함보다 어눌함을, 나아감보다 물러섬을 강조하는 것이 노자의 논리이다. 자벌레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뒤로 꿈틀하고 물러선다. 나아가기 위해 오히려 뒤로 물러서는 자벌레의 움직임을 노자는 높이 산다. 노자는 도를 깨닫기 위해서는 감각·지식·행위 모두를 버리라고 한다. 노 자 가 말 한 ‘ 무 위 자 연 ’은 아 무 것 도 덧 붙 이 지 말 고 자 연 을 자 연 그 대 로 두 라 는 뜻 이 다 . 노 자 는 아 무 것 도 아 닌것,아무것도하지않는것의가치를안사람이다.방이방구실을할수있는까닭은벽이나문때문이 아니라가운데있는빈공간때문이며,밥그릇도빈공간때문에밥을담을수있다.
“도덕경”에서 말하는 덕은 이 같은 도의 실현이며, 그 덕은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순박한 그대로의 상태이다. 통나무는 하잘것없어 보이지만 책상이니 의자니 어떤 것이든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노자는사람의인생은유약한것이그본래의모습이라고생각하여가장이상적인사람은물처럼사는사 람이라고 보았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부터 채워 간다. 만들어 내고도 자기만이 가지려고 하지 않고, 애쓰 고서도 공로를 자랑하지 않으며, 윗자리에 있으면서도 마음대로 간섭하지 않는 사람이 노자가 바라던 사 람이었다. 이를 위해 노자는 분명한 행동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여성적이고 수동적이며, 방어적 이고 소극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역설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이려고 한 것이다.


노자의 정치사상

노자는 공자와 마찬가지로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유가의 주장과 같이 정 치 교육으로는 천하의 안정을 도모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의 본체론에 의거하여 무위자연의 정치를 펼쳐나갔다.그는백성은지혜가있으면명예나이로움등에미혹되기쉽고우매하면천하가잘다스려 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백성을 통치하기 어려운 까닭은 백성에게 지혜가 많기 때문이며, 지혜로써 나라 를 다스리면 나라에 해(害)가 되고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않으면 복(福)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성(聖)을 끊고 지(智)를 버리면 백성의 이로움은 백 배가 되고, 인(仁)을 끊고 의(義)를 버리면 백성은 효성스럽고 자애 롭게 되며, 교[巧]를 끊고 이(利)를 버리면 도둑이 없어진다. -“도덕경”19장 - 또한 노자는 백성이 이기(利器)를 좋아하면 세상은 더욱 어지러워지고 백성이 기교가 많으면 기묘한 물건들이 많아지고 법령이 많으면 도둑이 늘어난다고 보았다. 통치자가 무위(無爲)로써 다스리면 백성 은 자연히 다스려지고 통치자가 정(靜)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자연히 바르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더불어 나라를다스림에는작은물고기를삶는것과같이하여결코서두르지말아야한다고하였다.이러한무 위의 통치가 실현된 이상 사회를 노자는‘소국과민’이라고 하였다. 이 사회는 사람들이 살아있음을 고맙 게여기며하루하루를즐기면서사는사회,그래서구태여위험을무릅쓰고더나은삶을찾겠다고떠나 는 일이 없는 사회이다. 심지어 다스리는 자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치와 무관한 사회이기도 하다.


장자의 생애

장자의 이름은 주(周), 자는 자휴(子休)이며, 맹자와 같이 전국 시대 초에 활동한 사상가였으나 서로 만나지는 못하였다. 그는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노자의 사상을 밝히고자 하였으며 유교의 가르침 을 비판하였다. 사마천의“사기”에 의하면, 초나라 왕이 사신을 보내 장자를 모셔가려 했을 때 “당신 나라에 신주로 모셔둔 신령스러운 거북이 있지요? 그 거북은 죽어서 영원히 신주처럼 모셔 지는 것을 바랐겠소, 아니면 제가 살던 물에서 자유롭게 삶을 즐기고 싶었겠소? 나는 진흙탕에서 꼬리를 흔들며 자유로이 살겠소.”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장자가 남긴 10만 자로 된“장자”의 풍부한우화속에는장자와그를따르던사람들의사상이담겨있다.장자는평생동안성 공을바라며애쓰는인간,지친몸을끌면서가는곳이어딘지도모르는인간,얕은지혜 를 부리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간, 죽으면 없어질 신체에 얽매인 인간, 물욕의 노예 가 되어 명예나 감각적인 것을 탐닉하는 인간에 대해 그러한 삶과 다른 세속의 모
든 구속을 벗어난 참다운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장자의 도(道)

장자 역시 노자와 같이 도(道)를 자신의 사상 체계 속에서 가장 중시하였으며, 명백하고 정밀 하게 설명하고 있다. 도는 우주의 어떤 사물이든지 존재하므로 우리 앞에 전개되는 모든 현 상은모두도의현상이다.도의발현이만물이므로도는만물을생성한다고할수있다.이 러한 도는 차별이 없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스스로 본(本)이 되고 스스로 근(根)이 된 다. 어느 날 동곽자가 도가 어디 있느냐고 묻자 장자는“도란 어디든 없는 곳이 없다.”라고 하였다. 막연하게 느낀 동곽자가 어디 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해 달라고 하였다. 이때 장자 는“개미 속에 있다”고 대답하였다. 어떻게 그렇게 보잘것없는 곤충에 도가 있냐고 반문하자 “잡초 속에도 있고, 깨진 기왓장 속에도 있으며 똥오줌 속에도 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은 결 국도가만물속에있다는말이다.개미든,잡초든,깨진기왓장이든,똥오줌이든모든것은다변한다.도란 바로 이러한 변화일 뿐이며, 따라서 모든 만물에는 모두 도가 들어있는 셈이다.장자는도를따르는일은자연을따르는일이라고한다.오리의다리가짧다고더붙여주면도리어괴 로워할 것이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절단하면 얼마나 아파할 것인가? 그러므로 선천적으로 긴 것은 끊을 것이 아니고 선천적으로 짧은 것은 이어 줄 필요가 없다. 인위(人爲)의 목적은‘절장보단(切長補斷)’하여 자연을 개조하는 데 있으나, 인위를 행하는 순간 자연으로부터 오는 행복은 끊어진다. 그러므로 인위로 써자연을해하거나작위로써자연을위반하는것은옳지않다.또한도를따르는삶은가치판단에얽매 이지 않고 나와 남을 구분 짓지 않으며, 만물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습지에서 자면 병에 걸리나 미꾸라지는 그렇지 않고, 사람은 고목에 오르면 떨리나 원숭이는 이와 다르다. 그렇다면 사람과 미꾸라 지,원숭이중에서어느것이가장옳은거주방법을안다고하겠는가?이와같이천하의사물은어떤일 방적표준에의하여그정당성을고집할수없다.우리들의사물에대한판단은극히주관적이므로불확 실하다. 가령 사물의 대소와 시간의 장단은 우리가 비교하여 보는 데서 생기는 개념에 불과하고 사물이 나시간그자체는대소나장단이있을수없다.크다는것은더큰것에비교하면작고,길다는것은더긴 것에 비교하면 짧은 것이다.
장자의사상은그뒤문학과예술에많은영향을주었고,중국에서선불교가발전하는데큰바탕이되 었다. 또 한편으로는 사회 비판적인 측면이 농민 봉기를 통해 혁명 정신으로 나타나기도 했고, 불로장생 과 신선 세계를 꿈꾸는 신비주의적 사상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장자의 인생관

장자는 노자의 사상을 계승하였으므로 선악을 분명하게 구분 짓는 유가의 입장과 다르다. 선악을 구분 짓는것은구속일뿐이며자유로울수없게만드는그릇된생각이다.따라서장자는가치판단을버리고 모든 것을 상대화하여 풀어 헤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이것이 만물제등(萬物齊等)의 철학이다. 만물은 환경이나 조건이 달라지면 그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는 하나의 획일화된 기준을 두지 않았다. 엄청난 미인이 물고기나 새들에게 가까이 가면 물고기나 새들이 놀라서 달아난다. 그렇다 면누가참다운아름다움을아는것인가?사람은나무에매달려자거나진흙탕속에서잘수없지만,원숭 이는 나무에 매달려 자고 미꾸라지는 진흙탕 속에서 잔다. 그렇다면 누가 편안한 잠자리를 아는 것인가? 결국 이런 판단은 인간이 만든 것에 불과하다.
장자는인생을일장의꿈으로보았다.사람이죽는것은꿈을꾸던자가깨는것과같다.죽는것은없 어지는 것이 아니고 화(化)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대하여 공포를 느낀다. 그것은 마치 어린 시절고향을떠난사람과같다.어린시절고향을떠난사람은타향을고향으로알고자신의본래고향으 로 돌아가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의 죽음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으므로 공포를 느낄 필요가 없다.장자는부인이죽었을때시체를깔고앉아항아리를두들기며노래했다.마침조문하러온친구혜 시가 그 꼴을 보고 놀라자, 장자는“나도 처음엔 슬펐다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슬퍼할 일이 아니었네. 집사람이 태어나기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간 것뿐인데 슬퍼할 까닭이 없지 않겠는가?”라고 답하였다. 장자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장자는 제자들에게 자기 가 죽거든 들에 버리라고 하였다. 깜짝 놀란 제자들이“아닙니다. 좋은 땅에 잘 묻어 드리렵니다.”라고 하 자,“땅에 묻으면 굼뱅이나 벌레가 파먹고, 들에 버리면 날짐승과 길짐승이 뜯어 먹겠지. 들에 버리면 하 늘 과 땅 이 내 관 이 고 , 해 와 달 과 별 이 내 관 속 에 들 어 있 는 장 식 품 이 아 니 겠 는 가 ? ”라 고 하 였 다 . 이 처 럼 장자는 생사마저도 하나로 보았다[死生一如].

비단옷을 벗고 더러운 돼지가 되고 싶소!

재상을 청하는 초나라 위왕이 보낸 사자에게 장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는 제사상에 오른 돼지를 못 보았는가? 몇 년을 잘 먹여 기른 다음에는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혀 태묘(太 蘭,중국에서황제의선조를제사지내는종묘)로끌고가기마련이다.이때야비로소한마리더러운돼지가되고싶어 한들 될 뻔이나 하겠는가? 그대는 빨리 돌아가라. 나를 더럽히지 말라. 내 차라리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노닐며 스스로 유쾌하게 지낼지언정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에게 얽매이지는 않겠소. 죽는 날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뜻을 편안하게 지 켜 나가겠소. ......세상의 부귀는 권력자의 엉덩이에 난 치질을 빨아내는 짓과 같은 정신의 굴욕으로 얻게 마련이다.”
도대체누가옳다고할수있을까?
“- 장 자 ”-
나와 당신이 논쟁을 했다고 합시다. 당신이 나를 이기고, 내가 당신에게 졌다면 당신이 옳고 내가 틀 렸을까요?내가당신을이기고당신이내게졌다면내가옳고당신이틀린걸까요?그한쪽이옳고다른 쪽이틀렸을까요,아니면두쪽모두옳은걸까요?두쪽모두다틀린걸까요?이러한일은나도당신도 알 수 없소. 그렇다면 제3자도 물론 판단을 내릴 수가 없게 되오. 우리는 누구를 시켜서 이를 판단하면 좋겠소?
당신과 입장이 같은 사람에게 판단을 내리게 한다면, 그는 당신과 같으니까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소. 나와 입장이 같은 사람에게 판단을 내리게 한다면, 그는 (이번에는) 나와 같으므로 공정한 판단을 할수없게되오.나와도당신과도입장이다른사람에게판단을내리게한다면,그는나와도당신과도다 르므로역시공정한판단을할수가없소.나와당신과도입장이같은사람에게판단을내리게한다면,그 는나와도당신과도입장이같으므로또한공정한판단을할수없소.그렇다면나도당신도,그리고제3 자도 모두 (옳다, 옳지 않다)의 판단을 할 수가 없는 거요. 그런데 누구에게 기대하란 말이오?
-“장자”-


죽음을 슬퍼하지 말라! 자연의 순리에 따를 뿐이다.

장자는 아내가 죽자 슬퍼하기는커녕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친구 혜시가 이유를 묻 자 다음과 같이 그는 대답하였다.
“아내가 방금 세상을 떠났을 때 나라고 어찌 슬퍼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 시초를 살펴보니 본래 생명이 없었 다. 인간의 생명이란 춘하추동 4계절과 똑같이 운행되는 것이다. 내 아내는 우주를 거실로 삼아서 평안히 누워 잠자고 있는데,내가큰소리를내어통곡을한다면,내스스로운명을통달하지못한것같아울음을그쳤다네.”



황로 사상

진나라때법가로부터가장소외당한학파가유가와도가였다.그리하여이에대한반발로써이두학 파가다시일어난것은어쩌면당연한일이었다.한나라초유가는주로외형적인제도에영향을주었다 면, 도가의 새로운 형태인 황로학은 의식 형태를 지배하면서 한 동안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문제(文帝)는 황로학을 신봉하였으며, 이를 통해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당시의 대부분의 학자들도 선진 시대의 여러 학파 가운데 도가를 최상위에 두고 존중하였다. 도가의 정치 철학 에의하면,훌륭한통치자는많은일을처리하는데있지않고,될수있는대로일거리를만들지않는데 있다고 한다. 이를 무위(無爲)의 통치라고 한다. 또한 성군(聖君)이 나라를 통치하면 그는 전임자의 실책 으로 인하여 생긴 나쁜 결과를 회복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한나라 초의 통치자들은 진나라는 과도하게 통치하여 문제가 발생하였고, 그리하여 신속하게 멸망했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한나라의 시조인 고조(高 祖)는 승리의 혁명군을 장안(長安)으로 이끌고 가서 백성들에게 말했다.“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도적 은 그 값에 해당하는 벌을 받는다. 그러니 이러한 규정 이외의 모든 진나라의 법은 폐지한다.”이렇게 한 나라의 고조는 무의식 속에서 황로학을 실천하고 있었다. 황로학은 한나라 초 통치자들의 의도와 일치하 였으며, 시황제가 벌여 놓은 각종 정책들을 되돌리고 오랫동안 전쟁에 시달리던 백성들에게 원기를 회복 시켜 줄 기회를 주었다.


태평도와 오두미교

한나라 말 부패한 조정과 탐관오리의 횡포로 인하여 백성의 삶은 피폐해지고 있었다. 또한 촌락 공동체 의 붕괴로 인하여 새로운 신앙과 공동체가 필요하였고, 이에 부응하여 태평도와 오두미교가 성립하였다.
태(太)란큰것이다.그쌓인크기가하늘과같은것을말한다.어떤것도하늘보다큰것은없다.평이란평등하게다 스려진것을말한다.모든일이잘다스려지면공평하지못한일은더이상없다.
태평도는 공평하고 균등한 이상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백성들의 정치·사회적 염원을 담고 있으며, 백 성들의고난에대한동정,조정의부패에대한공격,이상세계에대한동경등의표현은당시현실에대 한정확한인식과그것을해결하기위한의지를보인것이다.태평도는인간이행한죄업을해 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였고, 노장의 관념으로부터 빌려 온 형이상적 체계와는 또
다른 독특한 종교학적 체계를 구축하면서 백성들에게 희망이 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점은 오두미교도 마찬가지이다. 오두미교는 치병(治病)을 중심으로 하는 민간 신앙 으로 태평도(太平道)와 함께 도교(道敎)의 원류(源流)가 된다. 그 교문(敎門)에 들어갈 때 5두 (斗)의 쌀을 바친다고 하여 오두미교라 불리게 되었다. 나중에는 천사도(天師道)라고 했으며, 13세기부터는 정일교(正一敎)라고 불렀다. 이들은 마침내 교단을 형성하였는데, 이 교단을‘미 적(米賊)’이라고도 하였다. 오두미교는 모든 질병은 자신이 행한 죄(罪)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이 죄를 씻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병자에게 부수(符水)를 마시게 한 다음, 자기의 죄과를 3통(通)의 서류[三官書]에 쓰게 한 뒤, 이를 천·지·수(天地水)의 신에게 바치고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맹세해야 병이 치유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의식은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평소에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또한 백성들에게 선 (善)을 행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이상을 심어 줌으로써 삶의 희망이 되기도 하였다. 진 대(晉代) 이후 에는 지식층이나 귀족 중에도 오두미교를 믿는 자가 많았다.


왕필과 청담

도가의 사상은 위·진 남북조 시대에‘현학(玄學)’으로 일컬어지며 더욱 흥성했다. 당시 현학자인 육 운(陸運)은현학을몰랐는데,어느날밤에길을잃고어떤집에들어가묵게되었다.여기서한소년을만 나 함께“도덕경”을 논했는데, 대화가 심원한 데까지 이르렀고, 새벽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묵은 곳이 바 로 왕필(王弼)의 집이었음을 알았다고 한다. 이후“도덕경”이 매우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하였는데, 다 음의 대화는 왕필과 배휘(裵徽)가 나눈 청담의 일단이다.
배휘: 무릇 무(無)란 진실로 만물의 원천인데, 성인(공자)은 그것을 언급하지 않았던 반면, 노자는 끊임없이 강론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왕필: 성인은 무를 체득했고 게다가 무는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논의가 항상 유(有)에 미쳤지만, 노장(老莊)은 유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자신들이 부족한 면, 즉 무에 대해서 강론했던 것입니다.
왕 필 은 어 려 서 부 터 총 명 하 였 으 며 , 나 이 1 0 세 때 “ 도 덕 경 ”을 좋 아 하 여 그 사 상 을 정 연 한 논 리 로 토 론 하 였다. 당시 이부상서였던 하안은 왕필을 매우 기특하게 여기며“성인이 후생가외(後生可畏)라고 하셨거 니와 바로 이 사람이라면 천인지제(天人之際)를 논할 수 있겠다.”고 경탄하였다고 한다. 하안(何晏)은 성 인은 희로애락의 정감이 없다고 여겼는데 논의가 아주 치밀하여 모든 사람들이 감복하였다. 그러나 왕필 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성인이 보통 사람보다 풍부한 면은 지혜이고, 보통 사람과 같은 점은 정감이 다. 성인은 지혜가 풍부하기 때문에 천지 조화의 기(氣)를 체득하고 무(無)에 통한다. 정감이 뭇사람과 똑 같기 때문에 애락(哀樂)을 지니고 사물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성인의 정감은 사물에 응하지 만,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제 성인이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 점을 들어 사물에 반응하지 않는다고 한 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고 하였다.





도교와 민속의 융합 - 풍수지리(風水地理) 사상

풍수지리란, 땅에 만물을 화생하는 생활력이 있으므로 땅의 활력 여하에 따라 국가나 국토, 인간의 삶 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이러한 풍수지리 사상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는데, 그것을 집약해 정리한 이는 신라 말의 도선(道詵)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도선은 왕건이 왕위에 오를 것을 예언하 였고, 왕건의 국가 운영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한반도 전역을 답사한 경험을 통하여 단순 한이론의습득이아닌국토공간에대한경험적풍수이론을제시하였으며,한반도산천의형세를유기 적으로 파악하였다.
도선에 의해 체계화된 풍수지리 사상은, 개경을 수도로 삼는 데 영향을 주었으며, 태조 왕건이 국가를 경영하는데크게참고하였다.이후고려의중요한시책을결정하는데미친영향력은실로대단한것이 었다. 사찰을 건립하는 데나 천도 문제를 논의하는 데, 마을의 입지를 선택하거나 주택을 짓는 데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풍수지리설은 때때로 도참사상(圖讖思想)과 결합하여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도참사상은 그림이나 도식을 보고 앞날을 예언하거나 소문, 유언을 퍼뜨려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다. 도참사상이 인간생활의 길흉화복(吉凶禍福), 흥망성쇠(興亡盛衰)에 대한 예언 혹은 징조를 이르는 것이기에, 이 도참사상은 정치 적·사회적 혼란이 극심한 때에 주로 나타났다. 묘청(妙淸)의 서경 천도 운동(고려의 승려 묘청 등이 금 나라 정벌과 서경 천도를 주장하면서 일으킨 반란)은 풍수지리설과 도참설이 결합되어 전개된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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